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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갈등 비용 — 한국이 매년 태우는 233조 원의 회계

STARGATE88 2026. 7. 28. 07:23

부제: 앞선 글에서 분단비용을 계산했습니다. 이번에는 휴전선 이남의 청구서를 봅니다.
1. 갈등도 공짜가 아닙니다
앞선 글에서 저는 통일 논의의 오류가 "한쪽 비용만 계산하는 회계"에 있다고 썼습니다. 같은 진단이 국내 갈등에도 그대
로 적용됩니다.
우리는 갈등을 가치의 문제로만 다룹니다. 옳으냐 그르냐, 누가 정의로우냐. 그런데 갈등에는 청구서가 붙습니다. 그 청
구서는 논쟁에서 이긴 쪽에도, 진 쪽에도, 논쟁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똑같이 발송됩니다.
이 글은 옳고 그름을 다루지 않습니다. 가격표만 봅니다.
2. 숫자부터 — 연평균 233조 원
2024년, 국무조정실이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에 의뢰한 연구용역이 처음으로 정부 차원의 공식 추계를 내놓았습니
다.
2013~2022년 10년간 사회갈등의 경제적 비용: 2,327조 원
연평균 233조 원
2023년 정부 예산이 639조 원이었습니다. 매년 국가 예산의 3분의 1이 넘는 금액이 갈등으로 소각되고 있다는 뜻입니
다.
구성비는 이렇습니다.
갈등 유형 10년 누적 비용 비중
이념 갈등 1,981조 원 75%
노동 갈등 307조 원 11.7%
기타 (환경·지역·계층 등) 잔여 13% 내외민간 추계와의 대조
이 숫자는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닙니다.
삼성경제연구소(2013): 한국의 사회갈등 수준이 OECD 평균보다 심각해 발생하는 경제적 비용을 연간 82조~246
조 원으로 추산. 당시 한국의 사회갈등 수준은 OECD 27개국 중 2번째로 높았고, 이는 2009년 조사(4위)보다 악화된
결과였습니다.
같은 연구는 갈등지수가 OECD 평균 수준으로만 개선되어도 1인당 GDP가 7~21% 증가한다고 추정했습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더 보수적으로, OECD 평균 수준 개선 시 실질 GDP 0.2%p 추가 상승을 제시했습니다.
한국행정학회는 한국의 사회갈등지수를 세계 6번째로 높은 수준으로 발표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정직하게 짚어야 할 점
이 숫자들을 액면 그대로 믿으면 안 됩니다. 82조와 246조는 3배 차이입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0.2%p와 삼성경제연
구소의 7~21%는 두 자릿수 배율의 간극입니다.
특히 "이념 갈등 1,981조 원"이라는 항목은, 이념 대립을 어떻게 화폐로 환산했는지에 대한 방법론적 검증이 필요합니
다. 세월호·탄핵 같은 정치적 사건의 비용을 어디까지 귀속시킬 것인가는 연구자의 선택입니다.
그럼에도 방향은 일관됩니다. 모든 연구가 "갈등지수가 오르면 1인당 GDP가 내려간다"는 부(−)의 상관을 확인했습니
다. 논쟁의 대상은 크기이지 부호가 아닙니다.
3. 갈등비용의 4층 구조
갈등비용은 아래로 갈수록 커지고, 아래로 갈수록 장부에 안 잡힙니다.
1층 — 직접비용 (장부에 잡힘)
소송비, 공권력 투입, 시위 대응, 보상금, 사업 중단에 따른 금융비용. 밀양 송전탑, 방폐장, 사드 부지, 각종 국책사업 지
연 사례가 여기 속합니다.
이 층은 계산이 쉽습니다. 그리고 가장 작습니다.
2층 — 거래비용 (장부에 부분적으로 잡힘)
저신뢰 사회는 모든 거래에 추가 비용을 부과합니다. 계약서가 길어지고, 감사가 늘고, 인증이 필요해지고, 확인 절차가
중복됩니다.
신뢰는 경제학적으로 거래비용 절감 기술입니다. 신뢰가 낮으면 그 기술이 없는 상태에서 거래해야 합니다. 이 비용은 개
별 기업의 관리비 계정에 흩어져 잡히기 때문에 총량이 보이지 않습니다.3층 — 지연·무산 기회비용 (장부에 안 잡힘)
착수되지 않은 사업, 5년 지연된 인프라, 무산된 개혁. 일어나지 않은 일은 회계처리되지 않습니다.
연금 개혁이 20년째 지연되면서 발생한 미래 부담 증가분은 어느 장부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실재합니다.
4층 — 사회적 자본 훼손 (복리로 누적)
가장 크고 가장 안 보입니다. 사회적 신뢰의 하락은 단년도 손실이 아니라 성장률 자체를 낮춥니다. 성장률이 낮아지면
손실은 복리로 누적됩니다.
앞선 글에서 분단비용을 "영구연금"이라 표현했습니다. 사회자본 훼손은 그보다 나쁩니다. 원금이 줄어드는 영구연금입
니다.
4. 2026년 현재, 한국의 갈등 축은 어디에 있는가
특정 진영을 편들지 않고, 갈등의 구조만 봅니다.
(1) 정치 — '이념 양극화'가 아니라 '정서적 양극화'
이것이 가장 중요한 최근 발견입니다. 2026년 발표된 양극화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정치 분열은 정책 선호의 차이(이념
양극화)가 아니라 상대 진영에 대한 감정적 적대(정서적 양극화, affective polarization) 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핵심 수치 두 개입니다.
정당 지지가 가장 약한 응답자와 가장 강한 응답자 사이의 정서적 양극화 점수 차이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층과 국민의
힘 지지층 모두 42.8점으로 나타났습니다. 양쪽이 대칭입니다. 어느 한쪽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12·3 이후 응답자의 32%가 자기검열이 강화되었다고 답했습니다.
2025년 12월 조사에서는 국민의 77%가 "정치 양극화가 더 커졌다" 고 응답했습니다.
왜 이 구분이 비용 측면에서 결정적인가.
이념 차이는 협상 가능합니다. 법인세 25%와 20% 사이에는 22%가 있습니다. 중간값이 존재하고, 거래가 성립합니다.
정서적 적대는 협상 불가능합니다. 상대가 싫은 것에는 중간값이 없습니다. 게다가 상대가 찬성하면 나는 반대해야 하므
로, 정책의 내용이 아니라 제안자가 판단 기준이 됩니다.
이때 발생하는 비용이 정책 일관성의 붕괴입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에너지 정책, 부동산 정책, 노동 정책이 방향을 뒤
집으면, 기업은 10년짜리 투자 계획을 세울 수 없습니다. 자본은 예측 가능성에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예측 불가능성에
는 할인을 적용합니다. 이것이 갈등비용이 자본시장으로 전이되는 경로입니다.
(2) 노동시장 이중구조
10년 누적 307조 원(11.7%)이 노동 갈등 비용입니다. 다만 이 항목은 이념 갈등과 성격이 다릅니다. 경제 체계에 내재한, 예측 가능한 갈등이기 때문입니다.
예측 가능하다는 것은 제도로 관리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단체교섭이라는 해소 채널이 이미 존재합니다. 문제는 그 채널
이 '인정투쟁'과 '벼랑 끝 전술'이라는 관행 때문에 해소 장치가 아니라 증폭 장치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의 이중구조는 여기에 겹칩니다.
(3) 세대 — 부담의 시차
연금, 정년, 고용, 주거. 이 넷의 공통점은 한 세대가 결정하고 다른 세대가 지불한다는 구조입니다.
의사결정에 참여한 사람과 비용을 부담할 사람이 다를 때, 정치적 유인은 언제나 '결정 지연'입니다. 지연은 무료로 보이
지만, 지연 자체가 3층 비용입니다.
(4) 자산 격차
2026년 상반기 조사에서 생활수준 상/중상층과 하층 사이의 경기 인식 격차가 확대되었습니다. 주가와 물가가 동시에
오르면 자산 보유 여부에 따라 체감 경제가 정반대로 갈라집니다.
같은 나라에 살면서 다른 경제를 경험하면, 공통의 사실 기반이 사라집니다. 사실이 공유되지 않으면 합의는 원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5) 지역 — 수도권 일극 vs 지방소멸
수도권 집중은 비수도권의 박탈감이라는 정치적 비용과, 수도권의 주거·혼잡 비용을 동시에 만듭니다. 양쪽 다 손해인
드문 형태의 갈등입니다.
5. 왜 한국의 갈등은 유독 비싼가
OECD 하위권이라는 결과에는 구조적 이유가 있습니다.
원인 1 — 승자독식 제도
2026년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진단은 명확합니다. 87년 헌정 체제의 권한 집중형 대통령제는 이념적 양극화 상황에서
국회의 위상을 위축시키고, 여야 협치를 어렵게 만들어 왔습니다. 현행 대통령 선거제도는 승자가 모든 것을 독점하는 구
도를 만들어 양극화를 부추기며, 대선 패자는 국정 참여의 폭이 제한됩니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승자독식은 갈등의 기댓값을 극대화하는 설계입니다. 이기면 전부를 얻고 지면 전부를 잃는 게임
에서 합리적 행위자는 타협하지 않습니다. 타협의 수익이 0이기 때문입니다. 비용은 제도가 만듭니다.
원인 2 — '비동시성의 동시성'
한국행정연구원의 표현대로, 한국 사회의 갈등은 서구보다 다층적이고 동시다발적입니다. 전근대/근대/탈근대, 독재/민주화의 상이한 역사적 경험이 한 세대 안에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압축성장의 청구서입니다. 30년에 걸쳐 겪을 변화를 10년에 겪으면, 세대 간 세계관 격차가 3배로 벌어집니다.
원인 3 — 갈등 해결 인프라의 부재
한국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공식 채널은 사실상 법원과 거리, 두 개뿐입니다. 그 사이에 있어야 할 조정·중재·협의 기구
(ADR)가 얇습니다.
2013년 심포지엄에서 이미 갈등관리기본법 제정과 ADR 활성화가 제안되었습니다. 10년이 넘게 지났습니다. 갈등 해결
제도를 만드는 일 자체가 갈등의 대상이 되는 구조가 이 문제의 본질입니다.
6. 사회적 갈등에 대한 SWOT
긍정 부정
내부 S(강점)
· 높은 정치 참여율과 시민 동원력
· 갈등의 공론화 속도가 빠름
· 제도 개혁 시 반영 속도도 빠름
· 문제 인식 자체는 사회적 합의 (심각 인식 90%+)
W(약점)
· 정서적 양극화 (협상 불가능형)
· ADR·조정기구 취약
· 승자독식 선거·권력 구조
· 갈등 사안의 사법화 편중
외부 O(기회)
· 정부 차원 공식 갈등비용 추계 확보 (2024)
· 개헌·선거제 논의의 상시화
· 갈등지수 개선 시 GDP 상승 여지가 정량 확인됨
· 디지털 공론장 기술의 성숙
T(위협)
· 알고리즘 기반 정보 분극화 가속
· 인구구조 변화로 세대 갈등 구조화
· 저성장 고착 시 분배 갈등 격화
· 자기검열 확산에 따른 공론장 축소 (32%)
7. 비용을 줄이는 레버는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갈등 자체를 없애자는 말이 아닙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의 존재는 당연합니다. 문제는 관리되지 않은 갈등입니다.
조정 가능한 변수는 최소 네 개입니다.
1. 갈등영향분석의 의무화. 대형 국책사업 예비타당성조사에 갈등비용 항목을 정식 계상합니다. 지금은 갈등비용이 사
후에 실현되고 사전에는 0으로 계상됩니다. 장부에 안 잡히는 비용은 관리되지 않습니다.
2. ADR(대체적 분쟁해결) 제도화. 법원과 거리 사이에 조정 채널을 넣습니다. 소송은 승패를 가르지만 조정은 배분을 설
계합니다. 승자독식 구조를 사안 단위에서 완화하는 가장 실용적인 수단입니다.
3. 제도 설계에서 승자독식 완화. 선거제도와 권력구조는 가치의 문제이자 비용의 문제입니다. 타협의 수익률이 0인 게
임에서는 어떤 도덕적 호소도 작동하지 않습니다.4. 정책의 시계(視界) 분리. 연금·에너지·인구처럼 30년 단위 사안을 5년 정치 주기에서 분리하는 독립 기구를 두는 방
식입니다. 정권 교체마다 방향이 뒤집히는 비용은 정책 실패 비용보다 큽니다.
8. 반론 — 정직하게 붙입니다
첫째, 갈등비용 추계는 과학이 아니라 추정입니다. 82조부터 246조까지, 방법론에 따라 3배가 움직입니다. "233조"를
확정된 사실처럼 인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지적 태만입니다.
둘째, 갈등이 없는 사회가 최적은 아닙니다. 갈등지수 0은 완전한 합의가 아니라 억압의 지표일 수 있습니다. 갈등 비용
의 반대편에는 갈등의 편익—부정의의 시정, 소수의견의 반영, 권력 견제—이 있습니다. 이 편익은 비용보다 계량이 훨씬
어렵고, 그래서 자주 0으로 취급됩니다. 이 글이 경계하려는 오류를 이 글 자신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셋째, "통합"이 특정 진영의 언어로 쓰이는 순간 통합은 실패합니다. 갈등 관리를 주장하는 쪽이 상대의 침묵을 요구하
는 형태로 나타나면, 그것은 갈등 해소가 아니라 갈등의 다른 국면입니다.
맺으며
한국은 갈등에 매년 국가 예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출에는 예산서가 없고, 심의가 없
고, 결산이 없습니다.
국방비 60조 원은 국회에서 한 줄씩 심의합니다. 갈등비용 233조 원은 아무도 심의하지 않습니다.
앞선 글에서 저는 통일 논의가 30년째 제자리인 이유가 회계의 오류에 있다고 썼습니다. 국내 갈등도 같습니다. 우리는
갈등의 옳고 그름은 24시간 논쟁하면서, 갈등의 가격표는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먼저 청구서를 읽어야 합니다. 지불 여부는 그다음 문제입니다.
본 글은 특정 정당·진영에 대한 지지 또는 비판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인용된 정서적 양극화 지표가 양대 정당 지지층에서 동일하게
(42.8점) 나타난다는 점을 특히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갈등비용 추계치는 연구 방법론에 따라 편차가 크므로, 절대 수치보다 구조와
방향에 주목해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참고: 국무조정실 의뢰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 연구용역(2024) / 삼성경제연구소 「한국의 사회갈등과 경제적 비
용」(2013) / 한국행정연구원 「사회갈등지수와 갈등비용 추정」 / 현대경제연구원 / 경제인문사회연구회 「2026년
도 정치 분야 이슈와 제언」 / 한국갤럽·EAI 양극화 인식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