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표율은 올랐는데, 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가
- 청년은 정치를 외면한 적이 없다. 정치가 청년을 외면했을 뿐이다
- 대표 없는 세대의 산수(算數)
2026년 6·3 지방선거 투표율은 61.0%였습니다. 31년 만의 최고치입니다. 30대 이하 출마자는 810명으로 역대 가장 많았습니다. 한 정치학자는 이를 두고 "정치적 효능감이 투표율을 높였다"고 진단했습니다. 계엄과 탄핵을 거치며 내 표가 실제로 무언가를 바꾼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말은 폐기해도 됩니다. 관심은 충분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투표율이 31년 만에 최고치를 찍은 다음 날에도, 20·30세대의 삶을 규정하는 조건들 — 주거, 부채, 고용의 불안정성, 그리고 앞으로 40년간 납부할 연금의 설계 — 은 그대로였습니다.
이 글의 주장은 단순합니다. 20·30을 위한 정치는 없습니다. 있는 것은 20·30을 소재로 삼은 정치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청년의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 제도의 설계 때문입니다.
2. 대표성의 산수
감정을 걷어내고 숫자만 보겠습니다.
- 대한민국 인구에서 20·30대가 차지하는 비중: 약 26.7%
- 21대 국회 재적의원 298명 중 20·30대 의원: 4.3%(13명)
- 같은 국회에서 40·50대 의원: 71.1%(212명)
인구의 4분의 1이 의석의 20분의 1을 갖습니다. 이것은 편향이 아니라 배제에 가깝습니다.
국회의원 평균 연령은 54.9세, 우리나라 중위 연령은 43세 안팎입니다. 격차는 약 11.7세. G7 국가와 비교하면 미국 다음으로 큰 격차입니다. OECD 회원국 국회의원 평균 연령이 49.5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국회는 세계적으로도 유별나게 나이가 많습니다.
후보 단계에서 이미 결판이 납니다. 22대 총선 지역구 후보 699명 중 20·30대는 5.5%(38명), 60세 이상은 **39.1%(273명)**였습니다. 유권자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이미 걸러진 명단 안에서 덜 싫은 사람을 고릅니다. 투표율이 아무리 올라도 선택지가 바뀌지 않으면 결과는 바뀌지 않습니다.
3. 발의는 있고, 통과는 없다
"그래도 청년 법안은 나오지 않느냐"는 반론이 가능합니다. 나옵니다. 통과가 안 될 뿐입니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약 2만 4천 건의 법안 중 청년 관련 법안은 980건, 전체의 4.4%였습니다. 그중 실제로 통과된 것은 24건입니다. 발의 대비 통과율 2.4%. 전체 법안 평균 가결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발의 주체별 통계입니다. 20·30대 의원은 1인당 청년 법안 6.8건을 발의한 반면, 40대 의원은 3.6건, 50대는 3.1건, 60대는 3.2건이었습니다. 젊은 의원 한 명이 늘어날 때 청년 의제는 두 배 가까이 늘어납니다.
이 숫자가 말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의제는 대표를 따라옵니다. 대표가 없으면 의제도 없습니다. 선의(善意)로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4. 진입 장벽은 사고가 아니라 설계다
왜 젊은 후보가 나오지 않을까요. 흔한 답은 "청년이 도전하지 않아서"입니다. 데이터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첫째, 돈입니다. 21대 총선에 출마한 20·30대 정치인의 평균 지출액은 약 2억 원으로 조사됐습니다. 자산 형성 이전 단계의 세대에게 2억은 도전 비용이 아니라 자격 요건입니다.
둘째, 제도의 공전입니다. 청년 후보 공천을 유도하기 위한 청년추천보조금 제도가 있지만, 22대 총선에서 이 보조금을 수령한 정당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 제도는 존재하고, 아무도 쓰지 않습니다. 요건을 충족할 만큼 청년을 공천한 정당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선거제도입니다. 한국의 비례대표 의석 비중은 15.7%로 OECD 최하위권(33위)입니다. 국제 비교에서 비례대표 비중이 높은 나라일수록 40세 미만 의원 비율이 높다는 상관관계가 반복적으로 확인됩니다. 지역구 중심 소선거구제는 조직·인지도·자금을 이미 축적한 사람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그 셋 모두를 30대가 갖추기는 구조적으로 어렵습니다.
즉 청년의 정치 진입 실패는 개인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 비용·제도·선거방식 세 겹의 필터를 통과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필터는 우연히 생기지 않았습니다. 필터를 통과한 사람들이 필터를 만듭니다.
5. '청년 정치'라는 알리바이
선거철마다 각 당은 청년을 영입합니다. 청년최고위원을 뽑고, 청년위원회를 만들고, 20대 비례 후보를 상단에 배치합니다. 언론은 이를 '청년 정치의 부상'이라고 씁니다.
그러나 이 경로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선출이 아니라 간택입니다.
당의 필요에 의해 발탁된 개인은 당의 필요가 사라지면 소멸합니다. 세대를 대표할 기반(지역 조직, 후원 구조, 정책 참모)을 갖추기 전에 임기가 끝나고, 다음 선거에서는 다른 얼굴로 교체됩니다. 축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청년 정치인은 있어도 청년 정치 세력은 생기지 않습니다.
이것은 대표가 아니라 연출입니다. 그리고 연출은 대단히 효율적인 알리바이입니다. 몇 명의 얼굴을 배치하는 것만으로, 구조를 바꾸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려지기 때문입니다.
6. 정치는 표의 무게중심을 따라간다
정치인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을 뿐입니다.
60대 이상의 투표율은 오랫동안 70%대를 유지해 왔고, 20·30대는 평균 이하였습니다. 게다가 인구 구조 자체가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유권자 구성비와 실제 투표자 구성비의 차이 때문에, 20·30세대는 자기 인구 비중보다 적은 정치적 무게를 갖고 60대 이상은 더 큰 무게를 갖습니다.
표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계산할 줄 아는 정치인이라면, 한정된 재정과 정치적 자본을 어디에 쓸지는 자명합니다. 그래서 20·30 의제는 대체로 '구조 개편'이 아니라 '지원사업'의 형태로 등장합니다. 청년수당, 청년주택, 청년적금, 청년내일채움. 이름에 '청년'이 붙은 예산 항목은 늘어나지만, 부동산 세제, 정년, 연금의 세대 간 부담 배분처럼 실제로 자산과 권리를 재배치하는 영역은 거의 손대지 않습니다.
시혜는 정치적으로 저렴하고, 구조 개편은 비쌉니다. 대표가 없는 세대에게는 저렴한 쪽이 배정됩니다. 이것이 낮은 투표율 → 빈약한 청년 정책 → 정치 효능감 저하 → 다시 낮은 참여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작동 방식입니다.
7. 예상되는 반론 세 가지
"2026년에는 청년이 투표했고 투표율이 61%까지 올랐다. 이제 달라지지 않겠는가."
바뀔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상승은 계엄과 탄핵이라는 예외적 사건에 대한 반응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개인의 권리 침해에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이지, 세대 이익을 대표할 통로를 확보한 결과가 아닙니다. 통로가 없으면 열기는 한 번의 파도로 끝납니다.
"나이가 곧 대표성은 아니다. 50대 의원도 청년 정책을 잘 만들 수 있다."
원칙적으로 옳습니다. 그러나 발의 데이터는 나이가 실제로 의제 설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대리 대표가 불가능하다는 뜻이 아니라, 대리 대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청년은 하나의 이해집단이 아니다."
맞습니다. 20대 남성과 30대 여성, 수도권 임차인과 지방 자영업자의 이해는 서로 충돌합니다. 그러나 이 다양성이야말로 더 많은 대표가 필요한 이유이지, 대표가 없어도 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8.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세 가지만 제시하겠습니다. 모두 감정이 아니라 제도의 문제입니다.
- 비례대표 비중 확대. 15.7%는 OECD 최하위권입니다. 이 수치를 올리지 않는 한 청년·여성 대표성 개선은 구호에 머뭅니다.
- 청년추천보조금의 실효화. 수령 정당이 0곳인 인센티브는 인센티브가 아닙니다. 미달 시 국고보조금을 감액하는 방식의 페널티 구조로 전환해야 합니다.
- 출마 비용 구조 개선. 선거비용 보전 요건 완화와 공천 심사 과정의 공개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2억 원이 자격 요건인 한, 정치는 자산 보유자의 리그로 남습니다.
9. 맺으며
투표하라는 말로 이 글을 끝내지 않겠습니다. 20·30세대는 이미 투표했습니다. 61%는 그 증거입니다.
부족한 것은 참여가 아니라 통로입니다. 후보 명단에 오를 통로, 발의한 법안이 통과될 통로, 한 번 당선된 사람이 4년 뒤에도 살아남아 세력을 축적할 통로.
그 통로를 만드는 일은 기존 정치가 스스로 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통과시킨 필터를 스스로 없애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음 질문은 "누구를 찍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선택지를 만들 것인가"**여야 합니다. 20·30을 위한 정치는 없습니다.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입니다.